살아있는 유산

bag in the shadows

장인 기술과 창의성

알레산드로 벨루티가 그의 이름을 벨루티의 첫 번째 슈즈에 사용한 지도 120년이 지났습니다. 벨루티는 브랜드의 시작 단계부터 기술력과 창의성, 그리고 뿌리 깊은 비스포크 노하우의 특별한 결합을 토대로 독보적인 브랜드로 성장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된 요소들도 있지만 벨루티의 장인 정신만은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벨루티는 중요한 역사의 순간마다 장인정신을 유지, 계승하며 스타일의 변화를 이루어 왔습니다.
pair of shoes

현대의 걸작

앤디 워홀이 세계적인 팝 아티스트로서 명성을 떨치기 전에 그는 이미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앤디는 개인적으로 발과 구두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그의 이후 작품 활동에도 지속적으로 보여지게 됩니다. 따라서 1962년, 앤디가 벨루티 매장의 문을 열고 들어와 비스포크 로퍼를 주문 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앤디 워홀의 기본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옮기는 것은 젊고 열정 넘치는 올가의 임무가 되었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그녀의 급진적이고 대담한 라인의 슈즈는 워홀을 흥분시켰습니다. 한 눈에도 드러나는 커다란 흠결이 있는 가죽을 선택한 올가는 이 예술가에게 철조망에 몸을 비비기 좋아하는 반항기 다분한 특별한 소의 가죽을 사용했다고 설명했고, 앤디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반항기 다분한 이 별난 소에 매료되었습니다. 급기야 앤디는 이후로는 이 특별한 소의 가죽으로 만든 구두만을 신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오늘날 앤디 로퍼는 벨루티의 아이콘이자 퍼머넌트 콜렉션의 하우스 클래식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벨루티와 고객의 협업 정신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고객은 예술가이며 벨루티는 장인기술로 고객의 삶에 그것을 구현해 냅니다.
colours mix

컬러

전통적인 에티켓에 따르면, 저녁 6시 이후에는 블랙 외에 브라운 컬러 슈즈를 신어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옐로우나 퍼플, 그린 컬러는 어떨까요? 1980년대 올가 벨루티는 파티나를 개발하면서 남성 구두에 대한 컬러의 정의를 새롭게 했습니다.



벨루티는 더 이상 블랙과 브라운으로 국한하지 않은 다양한 컬러와 스타일의 슈즈를 선보였고, 이는 오늘날 벨루티 하우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전문 컬러리스트의 손 끝에서 탄생되는 에센셜 오일을 함빡 머금은 벨루티 슈즈는 그 특별한 기술에 의해 독특한 컬러를 띄게 되며, 생명력 넘치는 활기찬 컬러로 탄생됩니다. 파티나는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해 온 가죽의 느낌을 줍니다.



더 보기

crocodile skin
벨루티는 슈즈 외에도 백, 벨트, 액세서리 등에도 파티나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Exceptional leather

특별한 가죽

벨루티 파티나의 특별함은 베네치아 가죽에 있습니다. 이 특별한 소재는 천재적인 올가 벨루티가 최초로 천연 태닝과 미네랄 태닝의 복합 태닝 기법을 개발하면서 탄생되었습니다. 이 복합 태닝은 가죽을 유연하게 만들어 컬러를 깊이감 있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 주며, 파티나에는 베네치아 가죽 외에도 타조, 엘리게이터, 상어, 도마뱀 등의 희귀 가죽들이 비스포크 및 스페셜 오더 제작시 사용됩니다. 벨루티는 사용하는 모든 희귀 가죽에 대해 멸종 위기 동물 보호법을 준수합니다.
Master examines leather
파티나 된 베네치아 레더는 벨루티 슈즈와 가죽 제품에 특별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 벨루티 하우스의 혁신이며, 사용자의 개성을 나타내는 컬러로 각각의 아이템에 유일한 독특성을 부여하는 요소입니다.
Venezia leather bag

베네치아 레더

일본의 옻칠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파티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가죽의 베이스 컬러가 중요합니다. 부드럽고 섬세해서 다양하고 독특한 작업이 가능한 베네치아 레더를 개발한 것 역시 올가 벨루티의 중요한 업적 중 하나입니다. 벨루티가 개발한 특별한 태닝 과정을 통해 구두는 뛰어난 유연성과 컬러 점착성을 가지게 됩니다. 까다롭게 선별된 뛰어난 품질의 가죽에서 얻어낸 코팅 처리되지 않은 풀 그레인 가죽으로, 가장 완벽하고 무결한 부분만을 커팅해 슈즈 제작에 사용합니다.
Alessandro Berluti

ALESSANDRO BERLUTI

The Founder (1865)
1865

알레산드로 벨루티는 1865년 이탈리아 마르셰 지역의 작은 마을, 세네갈리아에서 탄생했습니다. 19세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성공을 위해 파리로 향했는데, 당시 파리는 19세기가 막을 내리면서 시대적 변혁을 겪으며 새롭게 다가오는 20세기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알레산드로는 이후 파리에서 10년간 부츠 메이커로 일하면서 이사도라 던컨, 엘리자베스 아덴, 헬레나 루빈스타인 등과 같은 당대 유명 인사들의 비스포크 구두를 제작하였습니다. 구두의 형태에 대한 안목과 우드 라스트에 대한 열정 덕분에 뛰어난 부츠 메이커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고 마침내 1895년, 한 장의 가죽으로 제작한 알레산드로 슈즈를 선보이면서 벨루티 하우스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Torello Berluti

Torello Berluti

The Entrepreneur (1915)
1915

1922년, 역동적으로 시작된 20세기는 그 발전의 속도를 더했고, 토렐로 벨루티는 장인 정신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구두 제작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알레산드로 벨루티로부터 완벽함에 대한 안목을 물려 받은 토렐로는 미적 감각과 구두에 대한 깊은 사랑, 조각 작품을 완성하는 것과 같은 정교함과 섬세함으로 구두를 제작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토렐로의 비스포크 구두는 현대적인 우아함의 대명사가 되었고, 1928년 뤼 몽 타보에 첫 번째 워크샵을 오픈했습니다. 이 워크샵은 이후 샹젤리제 인근 뤼 마베프 26번가로 이전하게 됩니다.

Talbinio Berluti

Talbinio Berluti

The Innovator (1964)
1964

탈비니오 벨루티는 14세에 가족 경영에 참여했고, 같은 시기에 건축 분야의 교육을 받기 시작합니다. 탈비니오는 그의 아버지 토렐로와 함께 구두를 제작하며 벨루티 하우스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후 시대에 태어난 젊은이로서 탈비니오는 벨루티의 국제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며 변화와 혁신을 주도했습니다.

1959년 최초의 기성화 콜렉션을 선보이며 보다 젊고 현대적인 고객층으로 벨루티의 저변을 확대했고,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벨루티 하우스의 정신은 장인의 전통에 대한 존경과 아티스트의 창의적 파격에 있다"

Olga Berluti

Olga Berluti

The Artist (1968)
1968

1960년부터 올가 벨루티는 벨루티에 예술적인 면모와 혁신성을 고취시켰습니다. 젊음의 활기로 가득한 올가는 매장을 창의적인 드로잉 룸으로 변모시켜 고객들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며 사교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재창조했습니다. 자크 라캉이 로만 폴란스키, 이브 생 로랑, 피에르 베르제, 칼 라거펠트 등이 이 곳을 즐겨 찾았습니다.

1980년대에 올가는 베네치아 레더와 파티나를 개발하면서 블랙과 브라운 일색의 남성 슈즈에 화려한 컬러를 도입했습니다. 앤디 워홀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는 아이코닉한 벨루티 슈즈이자 퍼머넌트 하우스 콜렉션의 고정 모델이 된 앤디 로퍼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남성을 아름답거나 잘생겨 보이게 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신사의 애티튜드를 만들고 싶다"